艮度數의 수수께끼 읽기
글: 양재학楊在鶴 (증산도상생문화연구소 동양철학연구부) (원문)
목차
1. 들어가는 말
2. 간도수 개념의 분석
3. 간도수와 한민족
4. 간도수와 자연개벽
5. 간도수와 ‘3변성도’에 의한 인간개벽
6. 맺음말
1. 들어가는 말
증산도사상은 천지공사를 통한 인류의 영원한 꿈인 조화선경의 건설을 지향한다. 조화선경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인가. 조화선경이 우주섭리에 의해 저절로 수립된다면 인간은 마냥 기다리면 될 것이고, 굳이 머리를 싸매고 탐구할 가치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결정론적 세계관과 거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어떤 특정한 공간에 주어진 입자의 위치와 운동속도가 주어질 경우, 그 원인과 결과의 인과법칙에 의거하여 측정하고 계산하면 우주의 기원과 생성의 모든 비밀을 헤아릴 수 있다는 서양의 라플라스의 기계론적인 과학적 주장과 하등 다르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조화선경은 우주섭리라는 생명의 창조원리와 우주 주재자의 권능이 합작하는 공동작품일 때 가능하다. 생명의 창조원리만 있고 주재자의 권능행사가 결여되면 결정론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주재자의 의지와 권능으로만 조화선경이 건설될 수 있다고 강조할 경우는 자칫 종교적 독단으로 빠질 위험이 있다. 조화선경이라는 어휘 밑바닥에는 형이상학적 우주론과 종교적 구원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낡은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짓는데 설계도와 목수와 온갖 재료가 필요하듯이 새집에서 살 사람의 취향에 맞게 그 구조를 짜는 근거가 바로 우주원리라면, 목수가 직접 설계도에 따라 재료를 선정하여 쾌적한 삶의 공간으로 꾸미는 것이 바로 천지공사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천지공사는 선천을 마무리하고 후천의 인류역사의 향방을 결정짓는다. 천지공사의 주인공은 천지의 질서를 뜯어고치는 천지의 통치자인 증산상제이다. 그는 생명을 재창조하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다. 증산상제는 신천지 건설의 완벽한 프로그램인 도수에 근거하여 한반도에 강세하였다. 따라서 한반도는 선천을 매듭짓고 앞으로 세계정세를 주름잡는 핵심센터가 된다. 이것이 바로 간도수의 수수께끼이다.
2. 간도수 개념의 분석
선후천은 우주의 두 얼굴이다. 선천과 후천을 관통하고, 그것을 구체화하는 이념을 형상화한 것이 바로 ‘간태합덕(艮兌合德)’이다. 간태합덕은 괘의 논리를 중심으로 설명한 것이고, ‘십일성도(十一成道)’는 무극, 태극, 황극의 3극원리에 근거하여 설명한 이론이다. 단지 이들은 공간 위주로 풀이했는가 아니면 시간 위주로 풀이했는가라는 입장의 차이가 있을 뿐 별개의 독립적 이론이 아니다. 이 둘을 종합적으로 해명한 것이 하도낙서의 ‘금화교역’이다. 금화교역에 의해 분열과 팽창을 일삼던 선천이 수렴과 성숙을 거쳐 후천으로 바뀐다. 따라서 금화교역은 괘의 논리와 3극논리를 일원화시키는 우주변화에 대한 구체화의 원리라 하겠다.
그렇다면 금화교역을 작동시키는 요인은 무엇일까. 거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내부요인이며. 다른 하나는 외부요인이다. 내부요인은 우주가 탄생될 때부터 원래 그렇게 프로그램화된 이치이다. 우주의 궁극적 이치인 도수를 구조적으로 분석한 것이 3극원리이고, 또한 도수에 의한 선후천 교체의 시간론적 해명이 하도낙서이다. 외부요인은 새로운 천지기운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와 이 세계를 구체적으로 변형시키는 물리적 힘이다.1)
이는 정역괘도에서 괘의 방향이 밖에서 안으로 진행하는 지천태(地天泰)의 형상이 증명하며, 그것을 가장 극적으로 나타낸 것은 정역괘도에서 땅을 상징하는 곤(坤)의 모습이다. 복희괘와 문왕괘는 땅을 곤이라는 글자로 표시한데 비해, 정역괘에서는 곤이라는 직접적인 언표 대신에 ‘ 中 ’으로 형상화했다. 그것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5運이 6氣로 바뀌는 과정에서 외부의 힘과 에너지가 내부의 질서를 변화시키는 양상을 형상화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정음정양(正陰正陽)의 구조로 전환되는 결정적 요인은 인격적 존재로서의 상제가 지상에 강림하는 것을 표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역의 논리에 따르면 ‘간도수’는 선천과 후천이 교체하는 원리를 함축하는 개념이다. ‘간도수’는 괘도에서의 ‘간’과 천지운행의 시간적 마디를 규정하는 ‘도수’라는 단어가 결합된 합성어이다. 그리고 도수란 천도지수(天‘度’地‘數’)의 약칭이다. 그것은 하늘의 뜻이 지상(땅)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원리를 표현하는 상수론적 술어이다.
복희팔괘와 문왕팔괘와 정역팔괘의 3자에서 볼 수 있는 두드러진 차이점은 남북축과 동서축에서 찾을 수 있다. 복희팔괘의 남북축은 천지비(天地否)의 형상을, 정역팔괘의 남북축은 지천태(地天泰)의 형상을 취한다. 천지에서 하늘은 양을, 땅은 음을 상징한다. 양기운은 위로 올라가고 음기운을 아래로 내려가 결국 음양은 더욱더 간격이 벌어져 조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천지비괘(天地否卦)’에서 만물의 비정상적 진화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정역팔괘는 음기운은 아래로 내려오고 양기운은 위로 올라가 음양이 교접하여 정상적 조화를 이루는 정음정양의 형상을 띤다.
문왕팔괘는 남북축이 ‘감리(坎離)’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서축은 ‘진태(震兌)’로 이루어져 있다. 감리가 중심축을 이루는 체계는 만물이 성장 일변도로 나아감을 표상한다. 그리고 동서의 ‘진태’(장남과 소녀의 불균형한 배합)는 감리의 운동을 정상적으로 콘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원초적으로 부적절한 천지운행의 기우뚱한 모습2)이며, 그것을 표상하는 시스템이 곧 문왕팔괘이다. 하지만 정역팔괘에서는 지천태의 남북축이 중심이 되어 결과적으로 소남소녀의 간태가 동서에서 대응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설괘전(說卦傳)」에 의하면 문왕팔괘도는 ‘진(震)’에서 시작하여 ‘간(艮)’에서 끝맺는다. ‘제출호진(帝出乎震)’이라는 명제에서 상제의 주재권능은 ‘진’에 깃들어 있으므로 문왕팔괘도는 ‘진’의 방위에서 출발함은 당연하다. 진의 방위에서 시작한 선천주역은 장남의 권위로 세상을 떨친다. 정역에서는 ‘3은 1과 5의 중앙(中)’이라고 했다. 즉 온 세계가 10무극의 세계라면, 문왕팔괘도의 3진(震)은 그 절반인 5의 ‘중앙(中)’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상극질서를 반영하는 문왕팔괘도는 좁고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세상이다. 선천주역은 8간(艮)에 와서 종결을 맺어 미제(未濟 :주역 64번째의 괘로서 6+4=10의 세계를 지향한다)로 끝난다.
주역은 무언가 다하지 못한 여운과 메세지를 남긴다. 하지만 주역은 파국을 넘어선 새로운 세상을 잉태하기 위해서 그 종결의 자리인 ‘8간(艮)’의 자리에서 바로 후천정역이 비롯된다. ‘8간(艮)’은 후천의 시작점이 되어 수화(水火)가 영원히 순환반복함으로써 선천 ‘3진(震)’의 세계를 마감한다. 후천은 선천의 닫힌 세계와는 달리 완전히 열려진 세계인 것이다. 그래서 정역은 ‘8은 15의 중앙의 중심[八은 十五中之中이라]’(「十一歸體詩」고 하였다. ‘8간’은 선천의 3진과는 다르게 ‘십건오곤(十乾五坤)’ 즉 ‘천지십오(天地十五)’의 중앙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왕팔괘도에서 정역팔괘도로의 전환은 3진(震)에서 8간(艮)으로의 비약이라고 압축할 수 있다. ‘(진변위간)震變爲艮’하여 열리는 ‘간태합덕의 세계’는 그 무대가 얼마나 광대무변한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김일부에 의해 정역괘 성립을 밝힌 내용이라고 규정된「설괘전」 6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물과 불은 서로 건져주고, 우레와 바람은 서로 거슬리지 않고, 산과 연못이 그 기운을 통한 이후에 능히 변화할 수 있고, 이미3)만물을 완성할 수 있다(水火相逮하며 雷風不相悖하며 山澤通氣然後에 能變化하여 旣成萬物也하니라).” 이것은 상극질서로 무한생장과 파국으로 치닫는 문왕괘의 원리가 상생질서를 표상한 정역의 세상이 이루어짐을 단언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다만「설괘전」은 정역괘의 원리를 당위론적으로 언급하고 있을 뿐, 그것이 왜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 가능한지는 생략하고 있다. 이는 김일부의 정역에 이르러 확연하게 밝혀진다. 소강절에 의해 낙서원리와 일치하는 ‘문왕괘도’라고 일컬어진 설괘전 5장에는 매우 의미심장한 내용이 담겨 있다.
“천지의 주재자인 상제는 진에서 만물을 발동시키며(이에 대한 또다른 해석으로서는 ‘천제의 활동은 진에서부터 나타나며’가 가능하다), 손에서 가지런히 하고, 이에서 서로 보고, 곤에서 수고로우며, 태에서 기뻐하고, 건에서 싸우고, 감에서 위로하고, 간에서 말씀(logos)이 이루어진다(帝出乎震하여 齊乎巽하고 相見乎離하고 致役乎坤하고 說言乎兌하고 戰乎乾하고 勞乎坎하고 成言乎艮하니라). 간은 동북방의 괘이니, 만물이 완성되어 마치는 바이며 또한 만물이 이루어져 처음으로 시작되는 바이기 때문에 ‘말씀이 간에서 완성된다’라고 한 것이다.(艮은 東北方之卦也니 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也일새 故曰成言乎艮)”
『시경』이나『서경』에 자주 나타나는 천지의 궁극적 근원자인 상제(上帝), 제(帝), 천제(天帝)의 용어가『주역』에는 여기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상제, 제, 천제는 동양의 신관에서 말하는 조물주, 또는 인격적 주재자를 가리킨다. 특히 ‘하늘의 말씀이 간에서 이루어진다(成言乎艮)’는 명제는 진리가 간방위에서 이루어진다는 혁신적인 발언인데, 이에 대해 과거의 학설들은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구절의 내용은 과연 무엇을 시사할까. 만물의 완성도를 표상하는 정역괘도에서는 간은 8, 태는 3으로 수식화되어 있다. 이들의 형식적 합(10 + 1)은 분명히 11이지만, 그 실질적 의미로는 11에서의 10은 무극, 1은 태극이다. 선천에서의 무극은 현상계의 배후에서 천지창조의 본원으로 자리잡아 태극으로 하여금 자신의 역할을 대신하게 했지만, 후천에서는 직접 조화권을 발동하여 새로운 천지를 여는 천지창조의 본체신이다.4)
3. 간방위와 한민족
지구의 방위와 각 민족의 삶의 터전을 공간적 방위와 연결시켜 최초로 논의한 것은 문왕괘이다. 문왕괘에서는 ‘艮’을 동북방의 위치로 배당하였다. 그렇다면 왜 간을 동북방에 놓았으며, 그것은 한민족과 어떤 관계일까? 주역에서는 8개의 방위를 중심으로 우주의 생성과 만물의 발생을 설명하는 방식을 취한다. 즉 우주는 시간적으로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공간적으로도 일정불변한 원칙에 의거하여 만물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의 이치는 시공의 법칙을 비롯하여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주역학에서 공간적 방위와 지구상의 지역을 연결시켜 구체적으로 정리한 기록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지구를 살아 있는 유기체적 생명체로 인식하여 각각의 지역과 팔괘방위를 직접 연관시켜 논의한 것은 비교적 최근에 와서 비롯되었다. 특히 동북방의 간방위를 한민족과 연계하여 논의하려면 우선 주역의 발상지 혹은 동북아문명권의 발상지는 어디이며, 그 주도적 민족은 과연 어떤 민족였는가가 전제되어야 한다.
①「설괘전」의 저작년대는 십익과 마찬가지로 빠르면 전국시대 말기, 느리면 한나라 중기 이후로 알려지고 있다. 지리적으로 중국쪽에서 보면 동북방은 만주와 요동지방이다.「설괘전」에서 말하는 동북방이 한민족과 연관이 있다면, 역사적으로 만주지방과 요녕성지방이 한민족의 주거지였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현재 고고학적 발견에 의해 황하문명을 능가하는 매우 수준 높은 문명이 실재했음을 증명되고 있다. 심지어 고대 동북아시아 문명권의 발상지는 황하문명권이 아니라, 동이민족이 일궈냈던 문화가 황하문명을 잉태시켰다고 주장되기에 이르렀다.
예컨대 동양경전에서 최고의 명문장가라고 일컬어지는 맹자(孟子)와 쌍벽을 이루었던 추연(鄒衍)은 그 당시의 제후들에게 맹자보다도 더 큰 환영을 받았고, 그의 역사철학적 음양오행설은 이후 동양인의 사유구조를 이루는 모델이 되었다. 추연이 활약한 주요 무대는 고구려와 국경을 접했던 연(淵)나라였다. 추연의 학설은 비록 조국에서 빛을 보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 영향력은 한의학을 비롯하여 실생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응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추연의 고향인 연나라는 넓게는 동이족의 활동범위에 속한다. 물론 추연의 음양오행설이 주역의 태극음양설과 직접적 관련이 있느냐는 실증적 논쟁은 벌써 1세기 전부터 있어 왔다[추연의 음양오행설과 주역의 태극음양설은 기원 자체가 다를 뿐만 아니라, 심지어 태극음양설에 기초하여 추연이 이를 확대해석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편 이가 바로 근대중국의 대표적 문헌학자인 (양계초)梁啓超이다]. 음양오행설과 주역의 태극음양설의 유래에 얽힌 논쟁은 지금도 그치지 않고 있다. 최근의 일부 역사학계에서는『서경』「홍범」편에 기록된 역법(曆法= Calender)문화는 동이족에서 연원된 것이라고 문헌적으로 고증하고 있다. 더 나아가 서경에 나타난 오래된 역사일수록 동이족의 문화와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사실일 경우 주역의 기원은 동이문화, 특히 한민족과 특별한 관계 속에서 발원되었음이 입증될 수도 있다.
② 위의 내용이 타당성이 있다면, 그것은 민족의 정통성회복과 직결된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 조상들은 땅의 지형과 형상에 맞추어 이름 짓기를 좋아했다. 충청남도 연산(連山)은 산이 너울너울 춤추듯 잇달아 이어져 있는 듯한 형상을 이루고 있는 까닭에 지명도 연산이라 불린다. 대전지역을 중심으로 볼 때, 양촌에서부터 시작한 산봉우리들은 개태사(開泰寺)를 거쳐 관저동(關雎洞)[시경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노래로써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을 읊은 시이다. 이는 음양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 담긴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근처에 있는 구봉산에 이르기까지 산들은 하나의 단절이 없이 연이어 있다. 이들의 결실처로서 태전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③ 하나라의 ‘연산(連山)’은 간괘를, 상나라의 ‘귀장(歸藏)’은 곤괘를, 주나라의 ‘주역(周易)’은 건괘를 으뜸으로 삼는다.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로 연산 → 귀장 → 주역으로 발전과정이 ‘간괘’를 으뜸으로 삼는 정역에 이르러 완성되는 것을 시사한다. 둘째로 연산 → 귀장→ 주역 → 정역으로의 4단계에서 귀장과 주역을 하나의 단계로 압축한다면, 그것은 증산도의 ‘삼변성도(三變成道)’의 이치와 합치된다고 할 수 있다.
4. 간도수와 자연개벽
자연개벽이란 천지의 변화를 가리키며, 천지의 변화는 일월의 변화로 드러난다. 선천의 낡은 일월은 물러나고 새로운 일월이 찬란히 솟는다. 일월의 변화는 새로운 책력을 필요로 한다. 즉 시간의 꼬리인 선천의 윤역(閏曆)이 탈락하여 후천의 정역(正曆)이 들어선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시공의 근원적 변화는 곧바로 지축정립이라는 엄청난 현상을 수반한다. 지축정립은 일월의 완성을, 일월의 완성은 천지의 완성(성공)을 뜻한다.
천지의 완성이 바로 조화선경 건설의 형식적 표현이라면, 그 실질적 내용은 인간과 신명이 하나되고 신문명이 건설되는 이상적 경계를 뜻한다. 다음의 대목은 시공간의 질서의 변화를 통해 정역팔괘도에서 건곤이 남북에 자리잡고, 동서에서 소남소녀의 간태가 조화하여 새로운 태양이 솟아 온누리를 밝히는 경지를 읊은 것이다.
永世花長乾坤位요 大方日明艮兌宮이라
영원한 평화의 꽃은 건곤위에서 길이 만발하고
대지 위의 태양은 간태궁을 밝히리라.(『도전』5:122:2)
이는 ‘간태합덕’으로 압축할 수 있다. 간태합덕 속에는 이미 우주의 재조정의 과정을 거쳐 천지가 성공한다는 완료형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때 동방의 艮이 주체가 되어 서방의 태(兌)를 수용하는 의미가 강하다. 그렇다고 서방의 태가 갖는 기운이 마냥 수동적 기운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서신(西神)이 명을 맡아 만유를 지배하여 뭇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나니 이른바 개벽이라”(『도전』4:21:2)는 말처럼 서방의 기운은 자연개벽을 가져오는 조화기운의 원동력이다. 즉 서(西)는 가을우주의 조화기운인 서방의 금기운(金氣運)을, 서신(西神)은 만물을 성숙시키고 문명을 개방하여 통일시키는 ‘금기운’을 주재하는 신을 가리킨다. 따라서 금신(金神)이 서신(西神)이요, 서신(西神)이 곧 금신(金神)이다. 가을의 기운은 신도(神道)로써 다가와 인류문명을 개방하여 통일시킨다. 그래서 증산상제는 가을우주을 열기 위해 이 세상에 내려온 자신의 정체를 ‘서신사명(西神司命)’이라 밝혔던 것이다. 서방의 금기운을 우주적 차원에서 밀려오도록(욱여들도록) 질서를 빚어내어 새로운 천지를 만들어 새생명을 여물게 하는 존재가 바로 ‘서신’이다. 그러므로 서신은 ‘조화신’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간도수’에는 새천지가 열리는 우주원리와 여기에 능동적 힘을 부여하는 우주주재자의 절대권능이 담겨 있다. 즉 ‘간도수’에는 새로운 우주를 여는 에너지로서의 힘과 그 효력이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따라서 정역사상에서의 간도수는 우주원리에 한정되는 소극적 개념이라면, 증산도사상에서 말하는 간도수는 자연개벽, 인간개벽, 문명개벽 이외에도 세운과 도운의 지도자출현 등을 복합적으로 포괄하는 적극적 개념이라 하겠다.
간도수의 의의는 크게 지축정립과 신문명의 출현, ‘3변성도’에 의한 신문명을 이끌어가는 새역사의 새 주인공의 탄생에 있다. 기울어진 지축이 정립됨으로써 지구의 자전축과 공전축은 우주의 중심과 일치하게 된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타원궤도에서 정원궤도로 탈바꿈함을 뜻한다. 또한 시간적으로 하루는 24시간, 한 달은 30일, 일년은 360일을 형성하여 캘린더 구성의 근원적 전환을 가져온다. 그래서 지구는 극한극서가 소멸되어 가장 살기 좋은 최상의 기후가 펼쳐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간도수에 내포된 자연개벽이다.
5. 간도수와 ‘3변성도’에 의한 인간개벽
3변성도는 무극, 태극, 황극의 창조원리에 근거하여 새생명이 열리는 우주정신의 궁극적 원리이다. 그것은 무극 → 태극 → 황극 → 무극의 창조적 순환원리로 표현할 수 있으며, 괘도의 발전은 복희괘 → 문왕괘 → 정역괘로, 캘린더의 구성은 원역 → 윤역(2개의 윤역) → 정역으로 우주가 성숙하여 완수되는 것처럼 인간역사도 3변성도의 원칙에 따라 전개되는 것이다. 인간개벽에는 두 가지의 뜻이 담겨 있다. 하나는 전통종교에서 말하는 개인의 심층에 자리잡고 있는 영혼의 본성을 자각하여 각자가 이상적 인간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류수행사의 결론인 태을주수행을 통하여 신명이 내리는 병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증산도는 후자의 입장을 견지한다.
선천에는 듣도 보도 못한 괴질을 초극할 수 있는 유일한 법방은 ‘의통(醫統)’에 있다. 의통은 천지공사에서 가장 중요한 공사 중의 하나인 도운공사를 책임지는 지도자에게 주어진 법방이다. 이런 점에서 도운의 책임자에게는 선후천변화의 우주원리에 근거한 역사적 사명과 책임이 있다. 이것이 바로 증산도의 인간학적 우주관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우리는 ‘세계일가 통일정권의 대공사’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은 동서양의 오가는 발길에 채여 그 상흔이 심하니 장차 망하리라. 이는 오랫동안 조선에서 조공 받은 죄로 인함이니라(『도전』5:402:7-8)
중국이 오랫동안 조선의 조공을 받아 왔으니 이 뒤로 25년 만이면 중국으로부터 보은신(報恩神)이 넘어오리라.(『도전』5:322:18)
무신년 10월에 고부 와룡리 문공신의 집에 머무르시며 대공사를 행하실 때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하의 난국을 당하여 장차 만세의 대도정사(大道政事)를 세우려면 황극신(皇極神)을 옮겨 와야 하리니 황극신은 청국 광서제(光緖帝)에게 응기되어 있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황극신이 이 땅으로 옮겨 오게 된 인연은 송우암이 만동묘(萬東廟)를 세움으로부터 비롯되었느니라” 하시고, 친히 곡조를 붙이시어 시천주주를 읽어 주시며 성도들로 하여금 밤마다 읽게 하시니라. 며칠이 지난 뒤에 말씀하시기를 “이 소리가 운상하는 소리와 같도다” 하시며 “운상하는 소리를 어로(禦路)라 하나니 어로는 임금의 길이라. 이제 황극신의 길을 틔웠노라” 하시고 문득 “상씨름이 넘어간다”고 외치시니 이 때 청국 광서제 죽으니라. 이로써 세계일가 통일정권공사를 행하시니 성도들을 앞에 엎드리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이제 만국 제왕의 기운을 걷어 버리노라” 하시고 성도들에게 “하늘을 보라” 하시매 하늘을 보니 문득 구름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제왕의 장엄한 거동의 모양을 이루어 허공에 벌어져 있다가 곧 사라지니라. 한 성도가 여쭈기를 “황극신이 이 동토에 넘어오면 천하의 大中華는 東土가 된다 하였사온데 그렇게 되면 청나라는 장차 어떻게 됩니까?” 하니 “내가 거처하는 곳이 천하의 대중화가 되나니 청나라는 장차 여러 나라로 나뉠 것이니라” 하시니라.(『도전』5:325:1-14)
여기에는 후천의 정치질서를 매듭짓는 최고신의 대행자의 출현에 얽힌 신비와 인류역사의 진행방향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다. 최고신의 대행자의 출현은 도운공사, 세계일가통일정권과 상씨름은 세운공사로 대별되는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우주의 통치자가 우주원리에 근거하여 천지공사를 처결하는 방식으로 결정되어 있다. 그 요체는 우주통치자의 경영방침에 따라 우주원리가 인사화되는 것에 있다.
황극신의 탄생과 ‘만동묘’를 발판으로 개벽의 대세를 결정하는 세운과 도운의 전개도 결코 ‘간도수’와 무관하지 않다. 과거에는 ‘만동묘’에 대해 우암 송시열의 유지를 받들어 제자인 권상하가 송나라의 은덕을 잊지 않으려고 세운 것이라고 천편일율적으로 해석하였다.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임진왜란 이후 붕괴되기 시작한 가치질서의 회복을 위해 예학(禮學)에 힘쓴 인물이다. 하지만 그것은 송시열의 단편만을 읽은 편견이다. 그는 효종(孝宗; 1619-1659)을 도와 청나라를 물리치고 잃어버린 옛땅을 회복하고자 했던 북벌론자이기도 하다. 우리는 송시열의 학문과 정치적 신조를 동시에 읽어야 한다. ‘만동묘’는 선조대왕의 어필(御筆)인 ‘만동(萬東)’과 사당을 가리키는 ‘묘(廟)’의 합성어이다.
만동은 원래 만 번 꺾여도 반드시 동으로 흘러간다는 만동필절(萬折必東)의 내용을 줄인 말이다. ‘만절필동’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당시 지식인들의 사대주의적 풀이이다. 지정학적으로 중국 동북방의 변방에 있는 조선은 항상 중국의 국력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동방의 조선을 지배하는 형식을 통해 보호하는 관계를 고수하고, 조선은 중국을 공경함으로써 국가를 보존할 수 있다는 패배주의적 풀이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의 모든 강은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는 뜻이 있다. 그것은 조선으로의 문화전승이나 정치적 영향력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국의 산하가 조선을 향하고 있듯이 중국문화는 조선에서 성숙되고 꽃피워 결론을 맺는다는 뜻이다. 이처럼 전자와 후자는 풀이는 완전히 상반될 수밖에 없다.
특히 우주론적으로 보더라도 북방의 ‘임수(壬水)’는 ‘만절필동’5)의 이치에 따라 반드시 동방 ‘간도수’의 방향으로 진입하여 새로운 생명의 세계를 성숙시킨다. 그래서 증산상제는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제 청국 일을 볼 터인데 길이 멀고 청주 만동묘에 가서 천지신문(天地神門)을 열고자 하나 또한 가기가 불편하니 다만 음동(音同)을 취하여 청도원(淸道院)에 그 기운을 붙여서 일을 보려 하노라.’”(『도전』5:402:1-3)라고 하여 세계질서 재편의 중심축을 한반도로 집중하기 위해 만동묘라는 특정한 공간을 이용하여 처결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만동묘’는 천지공사를 집행하는 하나의 특정한 장소일 뿐만 아니라, 과거 역사에 대한 총체적 심판과 조화선경 건설의 대행자 선정과 연관된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간도수’의 암호에 담긴 수수께끼는 한마디로 천지개벽이다. 그것은 앞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실현되는가. 남북의 상씨름과 대병겁, 그리고 시간 자체가 질적인 변혁을 일으킴으로써 일어나는 지축정립의 절차를 밟으면서 이루어진다. 특히 한반도가 개벽상황의 시발점이 되어 한민족은 선천의 낡은 문명을 정리하고, 새로운 생명문화를 여는 지구촌의 심장으로 자리매김하여 신문명건설의 모든 열쇠를 쥔다는 것이 간도수의 본질적 명제이다.
6. 맺음말
증산도사상에서 ‘간도수’는 천지개벽이 일어나는 핵심적 우주원리이다. 넓게는 우주론적으로 천지개벽이 일어나는 필연적 법칙이며, 좁게는 조그만 땅덩어리에 불과한 한반도가 우주와 지구의 핵심으로서 역사전개의 심장부라는 것으로 압축된다. 이는 자연섭리와 그것을 주재하는 주재자의 통치방식인 신명조화가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간도수’의 구체화는 선천개벽 이후 처음으로 발생하는 초유의 우주사적 사건이며, 최고신이 강림하여 처결한 천지공사의 핵심이며, 이들은 그 대행자에 의해 최종적으로 완수된다는 인류에 대한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천지공사는 간도수의 실행으로 집약된다. 간도수의 실현은 시공질서의 근본적 전환으로 나타난다. 시간적으로는 1년 366일의 윤역세계가 1년 360일의 정역세계로, 공간적으로 우주의 중심축이 올바르게 자리잡힘으로써 지구에 지축이 정립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시공의 기하학적 전환은 가치론적으로도 상극이 상생으로 바뀌는 기본질서를 동반한다. 따라서 후천의 시간질서는 ‘후천5만년’으로, 공간질서로서는 ‘조화선경’으로 정착되는 것이다. 하지만 간도수의 진정한 구현은 우주의 최고경영자의 대행자에 의해 완수된다. 그것은 우주주재자에 의해 도운의 최고책임자에게 부여된 신성한 명령이다.
간도수의 실현은 무극대도의 출현으로 직결된다. 그것은 인류역사가 여태껏 겪지 못했던 새진리이다. 이제는 새시대의 새진리가 요구된다. 그것은 우주의 필연법칙인 ‘간도수’의 구체화를 통해 열리는 천지개벽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간도수는 선후천이 바뀌는 우주원리(우주관), 그것을 인류역사에 전개시키는 우주주재자(신관), 그리고 이들을 현실적으로 매듭지어 신문명을 여는 인사의 대권자(인간관)의 사명이 함축된 천지공사의 최고봉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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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정역』「십오일언」, “一歲周天律呂度數”에는 후천을 실질적으로 리드하는 천지기운의 극적인 반전을 언급하는 내용이 있다. “潮汐之理는 一六壬癸水位北하고 二七丙丁火宮南하여 火氣는 炎上하고 水性은 就下하여 好相衝擊하며 互相進退而隨時侯氣節은 日月之政이니라. … 一夫能言兮여 水潮南天하고 水汐北地로다. 水汐北地兮여 朝暮難辦이로다. … 天一壬水兮여 萬折必東이로다. 地一子水兮여 萬折于歸로다.(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이치는 逆生倒成하는 낙서원리가 표상한다. 그것은 문왕괘도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복희괘에서 서방의 ‘일육임계수’가 아래로 내려가 북방에 위치하였음을 말하고, ‘이칠병정화’가 남방에 집을 짓는 것은 복희괘의 동방 離火가 뜨거운 것은 위로 올라간다는 원칙에 따라 문왕괘의 남방에 위치함을 뜻한다. 문왕괘의 ‘北方一坎水’는 逆生하고 ‘南方九離火’는 倒成하는 것이 선천의 해와 달이 빚어내는 정사이다. 불기운은 위로 올라가고 물기운은 아래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물과 불이 서로 충격하여 밀고 당기기 때문에 밀물썰물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水火, 즉 추위와 더위가 한 번은 나아가고 한 번을 물러감에 따라 기후와 절기의 변화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해와 달의 정사이다. 나 김일부가 금화교역의 구체적 변화인 하늘의 말씀을 할 수 있음이여! 지구의 북극은 물이 빠져 평지가 되어 밀물은 남쪽하늘에 모이고, 썰물은 북쪽 땅에서 빠져 남극쪽으로 몰려드는 구나. 물이 북쪽 땅에서 빠짐이여! 이는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나는 순간적 사건인 까닭에 그것이 닥치는 시간이 이르고 늦음을 판단하기는 실로 어렵도다. … 생명의 근원인 ‘천일임수’는 만 번 꺽여도 반드시 정역괘도의 동쪽인 ‘艮方’으로 흘러 새생명을 꽃피우게 되는 것이다. ‘지일자수’는 만 번 꺽여도 반드시 원시반본의 원리에 입각하여 ‘임수’를 따라 돌아가는구나!)” 밀물썰물의 현상은 대자연의 호흡이다. 후천에 접어드는 과정에서 대자연은 지독한 재채기를 하여 지축이동을 가져온다. 천지는 직접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극적인 대격변’으로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뜻을 표출한다.
2) 한동석,『우주변화의 원리』(서울: 행림출판, 1990), 199쪽. 그는 괘도의 변천에 따른 물리적 변동과 ‘금화교역론’의 정합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문왕괘도는 지축이 경사진 형상에서 우주운동을 설명한 도상이며, 정역괘도는 지축이 정립된다는 입장에서 취상한 도상이다. 따라서 문왕괘도의 시대, 즉 현실의 금화교역은 불완전한 교역이므로 변화가 예측 불가능하지만, 정역괘는 변화가 정상궤도에 오르는 평화시대의 도래”를 논리화한 도상이라 결론짓는다.
3) 위 인용문에서 능할 ‘能’자와 이미 ‘旣’자의 용법과 시제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능’은 조건이 성숙되어야 가능하다는 의미가 매우 강하다. 그리고 ‘旣’자는 문장 구조상, 미래시제 안에서의 과거형 혹은 과거완료의 뜻이 있다. 그것은 완성, 성공, 완수의 뜻을 갖는 ‘成’과 연결시켜 보면 천지기운을 상징하는 산택이 서로 교통한 뒤에야만 선천에서 후천으로 진입하는 우주변화를 겪은 다음에야 비로소 새로운 천지의 정립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4) 반드시 천지운행의 싸이클을 조정할 수 있는 권능은 상제인 ‘無極神’(초판『도전』5:278:3)에게만 있다. “무극신은 무극대운을 개벽하여 새 천지를 열어 놓으신 증산상제님을 가리키며, 그는 무극대운을 주재하시어 무극대도를 열어 주신 ‘무극상제님’이다.”(『도전』, 620쪽 각주 참조)
5) ①『도전』2:120:1-2,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서양이 곧 冥府라. 사람의 본성이 원래 어두운 곳을 등지고 밝은 곳을 향하나니 이것이 곧 배서향동(背西向東)이라.’” ②『정역』「십오일언」, “일세주천율려도수”, “天一壬水兮, 萬折必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