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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벌이를 위해 해외에 수출한 야생동물 ‘다람쥐’ | 한민족&한국인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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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벌이를 위해 해외에 수출한 야생동물 ‘다람쥐’

▲ 다람쥐의 전신 모습(강원도 점봉산자락, 2007년 8월)

 

사람들은 대개 ‘쥐’를 싫어한다. 다람쥐는 쥐와 사촌 관계지만 앙증맞은 모습과 귀여운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월트 디즈니 만화영화의 주인공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 귀여움이 화근이 돼 1962년부터 1980년대까지 애완용으로 외화벌이를 위해 한 해 수십만 마리가 외국으로 수출됐다.

3공화국 시절, 정부는 빈곤 타개와 국가 경제 성장을 위한 외화벌이가 절실했다. 당시 야생동물 자원관리를 담당했던 농림부 산하 산림청은 강원도에서 생포한 다람쥐 655마리를 한 마리당 미화 1불씩 받고 처음으로 해외에 수출했다. 다람쥐는 순식간에 팔려나갔고, 다람쥐를 처음 본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산림청은 외화벌이를 위해서 다람쥐를 대량으로 생포해 해외에 수출하는 계획을 만들어 실행했다. 특히 강원도지역이 다람쥐 생포 주 무대였다. 화전민이 대부분인 산촌 주민들은 예부터 식량이 부족한 긴 겨울 동안 생존하기 위해 다람쥐가 겨울잠을 자는 흙 굴을 파서 다람쥐가 모아놓은 도토리와 밤 등을 빼앗아 먹고 겨울 기아를 이겨냈다는, 지금은 믿기 어려운 말이 전설처럼 전해져 온다. 당시 궁핍한 생활을 하던 강원도 산촌 주민들은 돈도 벌고 식량도 구할 수 있는 다람쥐 생포를 환영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참여했다고 한다. 1970년에는 30만 마리가 수출됐다. 남획이 문제가 되자 1971년 산림청은 다람쥐 수출을 10만 마리로 제한하고 수출용 포획만 허용했다. 그러자 다람쥐 증식을 위한 사육이 붐을 이뤘고 다람쥐 수출은 1980년대까지 이어져 1991년이 돼서야 산림청은 다람쥐 포획을 전면 금지했다.

 

▲ 앞발과 뒷발을 이용해 가려운 곳을 긁는 귀여운 모습(강원도 점봉산 기슭, 2007년 8월)

 

해외로 팔려나간 다람쥐는 현지에서 탈출과 방생을 통해 야생 정착에 성공했다. 유럽의 경우 22개 지역에 다람쥐 야생 집단이 정착해 거주하고 있다. 프랑스가 절반에 해당하는 11개 지역으로 가장 많고, 벨기에,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국가의 도시공원과 도시 근교 숲에서 흔하게 관찰된다고 보고되고 있다. 이웃 국가 일본의 홋카이도 삿포로시 공원에도 한국 다람쥐가 살고 있다. 이 역시 수출된 다람쥐를 키우던 일본인이 풀어놓은 다람쥐가 정착한 것이다.

 


▲ 다람쥐의 전 세계 분포 그림(Mori 외 2018년 논문에서 인용)

처음에는 다람쥐의 귀여움에 반해 그리고 인수공통전염병에 대한 지식이 낮은 시기에 생긴 일이지만 유럽에서는 다람쥐에 의한 ‘라임병’이 알려져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재 다람쥐는 유럽연합체에서 세계 100대 외래 침입 야생동물 종으로 지정돼 엄격한 관리를 받고 있다.

(후략)

울산저널i 2020-06-25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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