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의 유래
복희팔괘도
우리나라 태극기를 놓고 중국의 ‘고태극도’에서 유래되었다느니, 1882년 일본으로 가는 선상에서 박영효가 즉석에서 창안했다느니 하는 여러 설이 있다(필자도 학창시절 그렇게 배웠음). 이는 현재 우리 역사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단편적으로 잘 보여준다. 국내외 일각에선 태극문양은 송나라의 주돈이가 그린 ‘태극도’가 최초라 주장하기도 하고, 태호 복희씨가 중국인이니 태극기 또한 중국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고태극도의 시초는 복희팔괘도라는 것은 누구나 수긍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복희팔괘도를 만든 태호 복희씨는 엄연히 우리의 조상(배달국 5세 태우의 환웅의 아들)이다. 그리고 고조선 제3대 가륵단군(BC 2181)이 한글의 기초가 되었던 가림토문자를 만들었는데, 이 가림토문자가 발견된 곳에서 태극문양의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박영효가 독자적으로 즉석에서 제작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고종(高宗) 황제가 일본 수신사로 떠나는 박영효에게 태극기의 도안·재질·도형의 설명·그리는 방법까지도 직접 언급하고 지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박영효의 일기에도 기록되어 있다. 그는 일기에서 “4각 형태의 흰색 바탕에 폭 부분 5분지 2를 중심 삼아 태극을 그려 청색과 홍색을 칠하고 네 귀퉁이에 4괘가 바라보도록 만든 새 국기를 임시 숙소(고베의 니시무라야) 옥상에 휘날림으로써 국왕의 명령을 다 받들었노라!”고 밝히고 있다.
국기의 필요성을 처음 느꼈을 당시(1882년 고종19년 5월 22일 체결된 조미수호 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 조인식), 강대국이었던 중국은 자기네 국기인 노랑색 바탕의 황용기(黃龍旗)를 약간 변형하여 청색 바탕의 청룡기를 만들어 사용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으나 고종황제는 이를 완강히 거부했다. 고종 황제가 처음 국기로 사용하게 한 태극기는 1392년 고려말 공양왕 때 제작된 범종(梵鐘)에 새겨져 있는 태극 모양과 4괘 도형이 정확히 일치한다. 고종 황제는 태극기를 새로 그려낸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태극 모양을 그대로 대한제국 국기로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